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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산화질소(NO)의 증진법개발 - 루이스이그나로
아귀라는 생선이 있습니다. 아주 못생겼는데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쫄깃하고 담백합니다. 또 비리지도 않아 주당을 비롯핸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귀를 인천 지역의 옛 어민들은 '물텀벙이’라고 불렀습니다. 못생기고 쓸모가 없어 어부들이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곧바로 물에다 '텀벙’ 버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아귀는 불가의 아귀(餓鬼)에서 왔다. 음식욕심이 많았던 사람이 죽어서 굶주림의 귀신, 아귀가 된다는 데서 유래됐습니다. 아마도 입이 커서 그렇게 연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로는 'blackmouth angler',다. 검은 입의 낚시꾼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동서양에서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접 못 받던 아귀가 요즘엔 찜과 탕의 재료로 쓰는 대표적인 생선이 되었습니다.
인체에서 중요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아귀처럼 과거에는 푸대접을 받다가 재조명된 게 일산화질소(NO: nitric oxide)입니다. 일산화질소(NO)는 질소(N)원자 1개와 산소(O) 1개로 구성된 무색의 기체이다. 한때 자동차의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 산화물로 인체 내에서 생성되면 세포를 파괴하는 유독물질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연구로 혈관을 이완시키는 신호전달 물질로 판명되고 NO는 천덕꾸러기에서 신데렐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산화질소를 연구해온 여러 사람들 중 루이스 이그나로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루이스이그나로는 미국으로 이민온 부모님으로부터 1941년 5월 31일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수 일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어린 루이스 이그나로를 작업장으로 데려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으나 어린 아들이 대학을 가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노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0살이 되자 이를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8살때 화학 실험도구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 육체적 노동자가 아닌 직업을 추구하려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이 화학 실험도구는 루이스이그나로에게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어린시절 화학물질 및 실험, 폭탄제조, 로케트 과학에 관심을 보이며 콜럼비아대학시절 대부분의 화학강좌를 수강하게 됩니다. 화학실험을 통해서 루이스이그나로는 폭죽, 폭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폭발물 분야에서 노벨의 이름과 업적을 접하면서 니트로글리세린과 협심증 완화에 대한 내용들도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관심을 끄는 부분이 약리학 수업이라는 것을 느끼며 미네소타대학 대학원에서 약리학을 연구하면서 부전공으로 심혈관 생리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약리학자로 일을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의 니트로글리세린과 협심증완화간의 관련성을 머리에 떠올리며, 또한 페리드 듀라드의 논문[NO가 환상 GMP의 농도를 100배 증가시킴]과 니트로글리세린의 ‘니트로’부분이 혈관의 평활근 벽에서 NO로 전환될수 있고 NO가 혈관의 평활근을 이완시킨다는 생각으로 No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NO는 연구가 힘든 분자였습니다. NO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와 후드를 쓴 채 실험을 해야 하며, NO는 매우 불안정하여 수초이내에 질산염과 아질산염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를 보존및 분해하는 일을 막아야 해 연구에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초기 NO연구과정에서 후원받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국립보건원과 기타 후원 기관의 대표자들은 연구가 생화학적으로 흥미로울수 있지만 어느 분야로 진행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자금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의 의학적 중요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또한 주요 과학저널에서도 이러한 연구발표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로 이를 인정받아 1998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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