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이어트/다이어트&운동&건강

"내 식욕 좀 어떻게 해줘요"

반응형

"내 식욕 좀 어떻게 해줘요"

비만 클리닉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내 식욕 좀 어떻게 해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식욕! 이 식욕! 식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먹는 것이 얼마나 큰 낙인데요.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비만증 환자들 중에는 정상 식욕의 범위를 넘는 분들이 있어 문제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화가 나면 닥치는 대로 먹어 제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은 먹는게 부실하다며 항상 뭔가 먹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정말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한 공기 먹으면 양이 차는데 한 밥통을 다 비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면서 마구 뱃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이런 사람들더러 "걸신"들렸다고 말합니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살아오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정신이 나는 것입니다.

최근 치료를 받고 있는 전×× 아주머니는 전에 수퍼마켓을 하던 분입니다. 자신은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자랑이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왈,

"양푼에 부추를 쏟아붓고... 제대로 비비기나 하나요... 그냥 비비다말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리 사이에 양푼을 놓고 막 퍼먹는 거지요. 얼마나 맛있는지. 손님이 오면 얼른 물건 내주고 들어와서는 정신없이 먹었어요. 나는 많이 먹을 수 있는게 자랑이었어요. 배가 얼마나 나왔었는지 목욕탕에 가서 앉아 있으면 배를 안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제 정상적인 상태로 식욕이 돌아온 뒤 과거 자신의 이상한 정신상태를 회고하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먹고싶다는 생각(식욕)이 어떻게 생기는지, 배부름과 배고픔은 어떻게 느끼게 되는지를 살펴봅시다.

사람의 대뇌 밑에는 "시상하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전신의 신경-내분비 조절을 하는 사령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만복중추(萬腹中樞)와 섭식중추(攝食中樞)라고 이름 붙여진 구역이 있습니다.
 
만복중추는 시상하부의 내측부(복내측핵)에 위치해 있으며, 섭식중추는 실방핵(paraventricular) 부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자극에 의해 이곳으로 배부름과 배고픔의 신호가 전달됩니다. 실험 동물의 시상하부에 각종 물질을 직접 주사함으로써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동물이 더 먹게 하기도 하고, 굶주린 동물이 먹을 것을 눈 앞에 보여줘도 먹지 않게 만드는 실험을 해보기도 하여 분명히 시상하부에는 포만과 공복감을 조절하는 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포만감과 공복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자는
혈액 중의 포도당 수치와 위장의 팽장 정도입니다.

음식물이 들어오면 곧 소화과정을 거쳐 혈액중의 포도당 수치(혈당치)가 올라가게 됩니다.

(소화라는 것이 뭐냐면 입을 통해 위장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잘게 부수어져서 에너지의 밑바탕이 되는 물질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의학적인 용어로는 이 과정을 부숙(腐熟)과 운화(運化)라고 합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물을 수곡(水穀)이라 하며 이것이 소화되어 에너지의 밑바탕이 되는 물질로 변한 것을 정미(精微)라고 합니다. 이것을 화학적으로 말하자면 음식물이 가수분해를 통하여 포도당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라간 혈당치로 인하여 여러가지 신경-내분비 신호에 의해 만복중추가 자극됩니다. 반대로 혈당치가 내려가면 섭식중추가 자극되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혈당치의 상승 만이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탕을 아무리 많이 퍼먹더라도 배는 부르지 않으며, 밥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배에 뭔가 들어가야 배가 부른 것입니다.
 
즉 위장이 음식물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만감을 느낄 때는 "아 이제 포도당이 높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 배가 부르다"고 느낍니다(이를 만복신호라 부르는 거지요). 화학적 포만과 물리적 포만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정신적인 포만도 있습니다. 같은 양의 화학적, 물리적 포만 자극이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배고픈 사람, 즉 걸신들린 사람은 더 많이 섭취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모든 면을 전인적(全人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비만인들은 "배가 불렀다. 그만 먹어라"고 외치는 만복중추의 외침을 잘 듣지 못하고, "아직 멀었다. 더 먹어라"는 명령은 아주 잘 들린다는 것이 비극의 한가지 원인입니다.
 

조금더 얘기해볼까요?

더 먹으라는 신호를 섭식중추에 전달하는 대표적인 물질은 노르에피네프린이고,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만복중추에 전달하는 대표적인 물질은 세로토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의 뇌척수액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 농도가 저하되어 있고, 음식을 엄청 많이 먹는 거식증 환자의 뇌척수액에서는 세로토닌이 감소되어있었다는 실험 보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외에도 도파민, 베타 엔돌핀, 카테콜라민, 엔케파린, 갈라닌, 성장호르몬 분비호르몬, 콜레시스토키닌, 칼시토닌, 글루카곤....등 각종 뇌의 위장관의 펩티드...뭐... 많습니다. 뭐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찾고 캐내고 쪼개내면 신경-내분비 신호를 전달하는 놈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서도 많은 한계에 직면하게 됩니다.
 
연구할 수록 이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져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고 인간의 머리로 풀어내기엔 너무나 꼬였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꼬인 실타래를 푸는 노력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약리기전을 가진 신약이 계속 개발되는 것이니까요.

이때 복잡하게 캐내던 삽을 내려놓고 한발 뒤로 물러서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식욕과 섭식행동을 조절하는 기구들은 크게 볼 때 양 진영으로 나뉩니다. "먹자"편과 "먹지말자"편입니다. 이들은 서로 길항적으로 작용합니다(우리 몸 돌아가는 이치가 다 이렇습니다). 서로 팽팽하게 당겨줄 때, 즉 역동적인 평형이 있을 때 우리 몸은 정상적인 식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식욕을 음양론적(陰陽論的)으로 사고해보면, 식욕이 과도하게 항진된다는 것을 "양이 너무 지나치다(陽性)"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식욕을 바로 잡아 줄 때 과도하게 항진된 양(陽)의 기운을 깎아주는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침도 그렇고, 한약도 그렇고 그러한 치료원칙을 가지고 운용하는 것입니다.

아하, 이제 어떻게 공복감과 포만감이 조절되는지 좀 알게 되셨죠?

그런데 말입니다. 배가 고파도 먹기 싫을 때가 있으며, 배가 불러도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즉 공복감과 식욕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현상을 잘 이해하면 자신의 섭식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됩니다. 
반응형